팔레스타인, 시에라리온 등 사선 건너 평화로
‘2026 DMZ 세계문학 페스타’...29일까지 3대 세션 진행.
세계 작가 350명, 파주 캠프 그리브스서 ‘평화 선언’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DMZ 캠프그리브스와 파주출판단지에서 ‘2026 DMZ 세계문학 페스타’가 개최됐다. 사진은 갤러리그리브스에서 청중으로 자리한 작가 및 시민들이 발언자들의 강연을 듣는 모습. 경기문화재단 제공
“제가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세계에서, 사선을 건너 온 팔레스타인 작가가 지난 27일 파주 비무장지대(DMZ)에 도착해 꺼낸 첫 문장이었다. 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는 지금, 국내외 작가들이 총이 아닌 ‘언어’를 들고 이곳에 섰다. 70년 넘게 군사적 긴장 속에 머물러온 공간, 분단과 대치의 상징인 동시에 생명과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DMZ에서 그들은 “침묵은 더 두렵다”며 전쟁을 끝까지 말하고 증언하겠다고 했다.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온 작가들은 증오와 혐오 대신 연대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 DMZ 세계문학 페스타’ 참가자들이 캠프 그리브스에서 과거 미군 주둔 당시 탄약고로 활용됐던 장소를 둘러보고 있다. 탄약고였던 이곳에선 현재 이승근 작가의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는 매핑 형식의 예술작품이 펼쳐지고 있다. 이나경기자
■ 전쟁의 시대, DMZ에 모인 작가들
27일 파주 캠프 그리브스에서 개막한 경기도·경기문화재단·한국작가회의 공동 주최의 ‘DMZ 세계문학페스타 2026’에는 국내외 초청 작가 및 2026 한국작가평화선언단 100인 등 작가 350여 명이 참여했다. 행사가 기획될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전쟁의 확산은 예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막을 앞두고 이란과 이스라엘·미국 간 전쟁이 발발하고, 팔레스타인·우크라이나·아프리카 등지에서 분쟁이 이어지며 세계는 폭력의 한복판에 놓였다.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기조강연에 나서고 있다. 이나경기자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전쟁을 국가나 이념이 아닌 개인의 기억으로 끌어왔다. 그녀는 “침묵은 내 삶 전체의 은유였다”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두렵지만, 침묵은 더 두렵다”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을 통해 전쟁을 영웅담이 아닌 개인의 기억과 고통으로 기록해왔다.
알렉시예비치 작가는 “우리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침묵을 배우며 자랐다”며 “침묵은 생존의 기술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독재와 억압은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0년 벨라루스 시위 당시, 경찰에게 끌려가던 여성이 “차라리 팔짱을 끼고 가자”고 말하며 함께 걸어갔던 장면을 언급하며 “서로를 증오하도록 강요받은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질의응답에서 그는 “민주주의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며 “새로운 세대는 그것을 잃는 것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사회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모습에 깊은 경외감을 느낀다”며 “그 행동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두려운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낡은 말”이라며 새로운 언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기조강연에 이어 질의응답에 나서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공
이날 건강상 이유로 불참한 황석영 작가의 강연문은 대독으로 전해졌다. 다섯 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분단선을 넘었던 기억에서 출발한 그의 이야기는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오늘날 세계의 전쟁으로 이어지며, 전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짚었다.
■ “우리는 큰 전쟁 안에서 작은 전쟁을 겪는다”
‘분단: 경계를 넘는 경이로운 순간’을 주제로 열린 첫 번째 세션에선 국내외 작가들이 각자의 경험담을 통해 전쟁이 일상의 구조로 작동하는 현실을 전했다. 팔레스타인 시인이자 아동청소년문학 작가인 아흘람 브샤라트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전쟁으로 이동이 번번이 막혀 행사 이틀 전에서야 비행기에 오를 수 있던 상황을 설명했다. 브샤라트 작가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목숨을 걸고’ 현장에 도착했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은 79년째 점령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큰 전쟁 안에서 작은 전쟁을 계속 겪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아동문학가 겸 시인인 아흘람 브샤라트(왼쪽 두번째)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청중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의 여건과 전쟁 중인 아랍의 상황으로 개막식 이틀 전에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나경기자
이날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강대국에 의해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내전으로 얼룩진 일상을 증언했다. 대학생과 노동자, 환자,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가 그 안에 놓여 있었다. 그는 “집이 구금소로 변한다”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아이들, 형제를 잃은 아이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쫓겨난 가족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이어 “전쟁은 책이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며 “절망 속에서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표현했다.
■ 3대를 건너온 전쟁, 증오 대신 선택한 길
유은실 아동청소년문학작가는 전쟁이 한 가족과 세대를 어떻게 관통하는지를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풀어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한 집단학살로 희생된 할아버지와,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살아온 자신의 삶이었다.
유은실 작가는 “아버지는 제 슬픔과 유머의 뿌리”라며,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한때 가해자를 증오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개인이 아닌 시대와 구조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유은실 작가(왼쪽 두번째)가 자신의 동화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며 희망의 미래를 표현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증오를 끝내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는다.”
유 작가는 이 비극을 개인에 대한 혐오가 아닌 구조에 대한 성찰로 풀어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전쟁의 상처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풀어냈던 고 권정생 동화작가의 ‘몽실언니’를 통해 문학과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겪은 사람이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증오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전했다.
■ “그를 죽여도 내 손은 돌아오지 않는다”
‘평화: 전쟁의 시대를 건너는 사람의 말’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세션에선 전쟁 이후 인간의 선택이 화두로 제시됐다. 이날 시에라리온 출신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스마엘 베아는 소년병으로 내전에 참여했던 경험을 전했다. 그는 “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던 존재였다”고 표현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전쟁에 얼굴을 붙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전하는 길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치유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베아 작가는 청중에게 전쟁 중 손을 잃은 자신의 소년병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해 베아를 포함한 일행이 가해자 소년병을 찾아갔지만, 피해자였던 친구는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시에라리온에서 온 작가 겸 인권운동가인 이스마엘 베아(오른쪽)는 소년병으로 참전했던 경험을 언어로 증언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그를 죽여도 내 손은 돌아오지 않는다.”
베아의 친구는 왜 그 소년병이 자신의 손을 잘랐는지 그 이유만을 알고 싶어했고, 상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손이 잘릴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털어놨다. 모두가 어린 소년병이였고, 지시에 의한 폭력이었다는 것이다.
베아는 “전쟁에서는 누구도 온전히 승자일 수 없으며 결국 남는 것은 상처 입은 인간뿐”이라며 “평화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야기는 공유될 때에만 강력하다”며 “이 이야기를 밖으로 퍼뜨려 달라”고 강조했다. 전쟁의 잔혹함과 참혹함, 승자와 패자도 명확한 가해자도 구분할 수 없는 전쟁의 무가치함을 언어로 증언해달라는 것이다.
한편 이번 페스타는 29일까지 나흘간 기조강연과 세션, 작가 낭독과 대화 프로그램 등으로 진행됐다. 민주주의의 위기, 전쟁의 기억, 디아스포라와 이주의 현실, 마이너리티의 권리 등 동시대 핵심 의제가 문학의 언어로 논의됐다. 특히 ‘생명·평화·공존 세계작가네트워크’ 구성이 추진돼, 국내외 작가들이 전쟁과 폭력, 차별 문제를 지속적으로 함께 다루고 국제적 연대를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 27일 파주 DMZ 캠프그리브스에서 개막한 ‘2026 DMZ 세계문학 페스타’에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 해외 작가와 도종환 시인 등 국내 작가 및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에 나서고 있다. 이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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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시에라리온 등 사선 건너 평화로
‘2026 DMZ 세계문학 페스타’...29일까지 3대 세션 진행.
세계 작가 350명, 파주 캠프 그리브스서 ‘평화 선언’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DMZ 캠프그리브스와 파주출판단지에서 ‘2026 DMZ 세계문학 페스타’가 개최됐다. 사진은 갤러리그리브스에서 청중으로 자리한 작가 및 시민들이 발언자들의 강연을 듣는 모습. 경기문화재단 제공
“제가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세계에서, 사선을 건너 온 팔레스타인 작가가 지난 27일 파주 비무장지대(DMZ)에 도착해 꺼낸 첫 문장이었다. 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는 지금, 국내외 작가들이 총이 아닌 ‘언어’를 들고 이곳에 섰다. 70년 넘게 군사적 긴장 속에 머물러온 공간, 분단과 대치의 상징인 동시에 생명과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DMZ에서 그들은 “침묵은 더 두렵다”며 전쟁을 끝까지 말하고 증언하겠다고 했다.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온 작가들은 증오와 혐오 대신 연대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 DMZ 세계문학 페스타’ 참가자들이 캠프 그리브스에서 과거 미군 주둔 당시 탄약고로 활용됐던 장소를 둘러보고 있다. 탄약고였던 이곳에선 현재 이승근 작가의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는 매핑 형식의 예술작품이 펼쳐지고 있다. 이나경기자
■ 전쟁의 시대, DMZ에 모인 작가들
27일 파주 캠프 그리브스에서 개막한 경기도·경기문화재단·한국작가회의 공동 주최의 ‘DMZ 세계문학페스타 2026’에는 국내외 초청 작가 및 2026 한국작가평화선언단 100인 등 작가 350여 명이 참여했다. 행사가 기획될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전쟁의 확산은 예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막을 앞두고 이란과 이스라엘·미국 간 전쟁이 발발하고, 팔레스타인·우크라이나·아프리카 등지에서 분쟁이 이어지며 세계는 폭력의 한복판에 놓였다.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전쟁을 국가나 이념이 아닌 개인의 기억으로 끌어왔다. 그녀는 “침묵은 내 삶 전체의 은유였다”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두렵지만, 침묵은 더 두렵다”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을 통해 전쟁을 영웅담이 아닌 개인의 기억과 고통으로 기록해왔다.
알렉시예비치 작가는 “우리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침묵을 배우며 자랐다”며 “침묵은 생존의 기술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독재와 억압은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0년 벨라루스 시위 당시, 경찰에게 끌려가던 여성이 “차라리 팔짱을 끼고 가자”고 말하며 함께 걸어갔던 장면을 언급하며 “서로를 증오하도록 강요받은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질의응답에서 그는 “민주주의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며 “새로운 세대는 그것을 잃는 것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사회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모습에 깊은 경외감을 느낀다”며 “그 행동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두려운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낡은 말”이라며 새로운 언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기조강연에 이어 질의응답에 나서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공
이날 건강상 이유로 불참한 황석영 작가의 강연문은 대독으로 전해졌다. 다섯 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분단선을 넘었던 기억에서 출발한 그의 이야기는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오늘날 세계의 전쟁으로 이어지며, 전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짚었다.
■ “우리는 큰 전쟁 안에서 작은 전쟁을 겪는다”
‘분단: 경계를 넘는 경이로운 순간’을 주제로 열린 첫 번째 세션에선 국내외 작가들이 각자의 경험담을 통해 전쟁이 일상의 구조로 작동하는 현실을 전했다. 팔레스타인 시인이자 아동청소년문학 작가인 아흘람 브샤라트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전쟁으로 이동이 번번이 막혀 행사 이틀 전에서야 비행기에 오를 수 있던 상황을 설명했다. 브샤라트 작가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목숨을 걸고’ 현장에 도착했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은 79년째 점령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큰 전쟁 안에서 작은 전쟁을 계속 겪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아동문학가 겸 시인인 아흘람 브샤라트(왼쪽 두번째)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청중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의 여건과 전쟁 중인 아랍의 상황으로 개막식 이틀 전에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나경기자
이날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강대국에 의해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내전으로 얼룩진 일상을 증언했다. 대학생과 노동자, 환자,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가 그 안에 놓여 있었다. 그는 “집이 구금소로 변한다”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아이들, 형제를 잃은 아이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쫓겨난 가족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이어 “전쟁은 책이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며 “절망 속에서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표현했다.
■ 3대를 건너온 전쟁, 증오 대신 선택한 길
유은실 아동청소년문학작가는 전쟁이 한 가족과 세대를 어떻게 관통하는지를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풀어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한 집단학살로 희생된 할아버지와,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살아온 자신의 삶이었다.
유은실 작가는 “아버지는 제 슬픔과 유머의 뿌리”라며,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한때 가해자를 증오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개인이 아닌 시대와 구조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유은실 작가(왼쪽 두번째)가 자신의 동화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며 희망의 미래를 표현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증오를 끝내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는다.”
유 작가는 이 비극을 개인에 대한 혐오가 아닌 구조에 대한 성찰로 풀어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전쟁의 상처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풀어냈던 고 권정생 동화작가의 ‘몽실언니’를 통해 문학과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겪은 사람이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증오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전했다.
■ “그를 죽여도 내 손은 돌아오지 않는다”
‘평화: 전쟁의 시대를 건너는 사람의 말’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세션에선 전쟁 이후 인간의 선택이 화두로 제시됐다. 이날 시에라리온 출신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스마엘 베아는 소년병으로 내전에 참여했던 경험을 전했다. 그는 “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던 존재였다”고 표현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전쟁에 얼굴을 붙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전하는 길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치유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베아 작가는 청중에게 전쟁 중 손을 잃은 자신의 소년병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해 베아를 포함한 일행이 가해자 소년병을 찾아갔지만, 피해자였던 친구는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시에라리온에서 온 작가 겸 인권운동가인 이스마엘 베아(오른쪽)는 소년병으로 참전했던 경험을 언어로 증언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그를 죽여도 내 손은 돌아오지 않는다.”
베아의 친구는 왜 그 소년병이 자신의 손을 잘랐는지 그 이유만을 알고 싶어했고, 상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손이 잘릴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털어놨다. 모두가 어린 소년병이였고, 지시에 의한 폭력이었다는 것이다.
베아는 “전쟁에서는 누구도 온전히 승자일 수 없으며 결국 남는 것은 상처 입은 인간뿐”이라며 “평화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야기는 공유될 때에만 강력하다”며 “이 이야기를 밖으로 퍼뜨려 달라”고 강조했다. 전쟁의 잔혹함과 참혹함, 승자와 패자도 명확한 가해자도 구분할 수 없는 전쟁의 무가치함을 언어로 증언해달라는 것이다.
한편 이번 페스타는 29일까지 나흘간 기조강연과 세션, 작가 낭독과 대화 프로그램 등으로 진행됐다. 민주주의의 위기, 전쟁의 기억, 디아스포라와 이주의 현실, 마이너리티의 권리 등 동시대 핵심 의제가 문학의 언어로 논의됐다. 특히 ‘생명·평화·공존 세계작가네트워크’ 구성이 추진돼, 국내외 작가들이 전쟁과 폭력, 차별 문제를 지속적으로 함께 다루고 국제적 연대를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 27일 파주 DMZ 캠프그리브스에서 개막한 ‘2026 DMZ 세계문학 페스타’에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 해외 작가와 도종환 시인 등 국내 작가 및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에 나서고 있다. 이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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