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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쓰기’는 현재를 다시 쓰는 일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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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경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전태일평전> 손글씨 이어쓰기의 반응이 뜨겁다. 불과 한 달 만에 노동자, 시민, 고등학생, 문학인, 광주, 부산, 춘천 등 전국 각지에서 참여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 주말 파주에서 열린 DMZ세계문학페스타 <전태일평전> 부스에서는 초등학생들도 고사리손으로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다. 이날 저녁에는 자신의 언어를 갈고 닦는 문학인들이 <전태일평전> 필사노트를 돌려가면서 한 문단씩 따라 적었다.


주말 같은 시간 대전, 현장조직 모임인 ‘평등의 길’ 전국위원 워크숍에서는 우리 노동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활동가들이 모여 <전태일평전>을 함께 필사하며 초심을 다졌다.


“순수한 분노, 순수한 연민”


같은 책을 펼쳐보고 그대로 따라 쓰는, 어찌 보면 단조로운 행위이지만 마음에서 일렁이는 감정과 생각은 각각 다르다.


“순수한 분노, 순수한 연민.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 지난 4일, <전태일평전> 이어쓰기 첫 번째 현장 캠페인에 참석한 고 조영래 변호사의 부인이자 이옥경 밥일꿈 이사장의 회고다.


인권운동가 박래군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활동하며 다시 책을 보게 됐지만 그때는 끝까지 읽기가 어려웠다고 되뇌었다. 그는 이소선 어머니에게 책을 보았느냐고 묻던 순간도 전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나는 안 본다”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기절을 하셨다는 이야기였다. 이날 그는 전태일이 마지막 순간 어머니에게 다짐을 받는 대목을 꾹꾹 옮겨 적었다.


2차 현장 캠페인에 나온 전태일의 후배인 봉제 노동자와 사업주, 소공인들은 재단판과 재봉틀 위에서 날아다니던 손으로 한 땀 한 땀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전태일평전>에 나오는 그 평화시장 시다로 사회 첫발을 디뎠던 봉제 노동자는 이제는 장인의 경지에 이른 재봉사가 됐으나, 갈수록 내리막길로 떨어지는 봉제산업의 현실에 막막해하며 썼다.


한 사람의 말이 모두의 외침으로


DMZ세계문학페스타에 기조강연자로 나온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에 참전했던 ‘소녀 병사들’의 목소리를 구술 그대로 채록해 엮은 작품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수많은 증언을 모아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했고, 흩어진 개인의 경험을 시대의 목소리로 엮어냈다. 무엇보다 역사 속에서 지워졌던 감정과 감각을 드러냈다.


문학은 반드시 새로 쓰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타인의 목소리를 끝까지 듣는 데서 시작한다. 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마주해야 할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태일평전> 이어쓰기는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를 다시 쓰는 일이다.


굳이 역사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복기’는 작가 지망생들이 필수적으로 거치는 훈련이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가 쓴 소설을 읽어야 할 시대가 닥칠지도 모른다. 그 AI의 신경망이 인간 흉내를 내기 위한 트레이닝 코스가 바로 병렬 사전학습이니, ‘이어쓰기’란 기억의 전승을 넘어 운동의 미래를 움켜쥘 필요조건이 아닐까.


1970년 11월13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외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말하지만, 비정규직·플랫폼·프리랜서·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법의 바깥에 내팽개쳐져 있다. ‘오늘의 전태일’들은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11월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이유는 이 질문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자는 사회적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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